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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liy/생각

돌 닦는 사람

by 오우영 2020. 12. 27.

 

 

 

 

 

1년에 한번 있는 큰 행사날

 

뜨거운 햇살을 막아줄

그늘을 만들어주고자

곳곳에 설치한 천막들

 

그 천막을 지지하고자

길게 뻗은 줄 아래로

날카롭게 튀어나온 지지핀

 

눈이 안 좋으신 어르신들과

조심성 부족한 아이들이

걸려 넘어져 다칠까

그 위로 올려놓은 큼직한 돌맹이들

 

매년 이쯤 되면 늘 보던 풍경이였다

 

그 돌맹이들은

지지핀보다 잘 보였고

누구나 피해 갈 수 있을 만큼

큼직했지만 자연스럽지는 않았다

 

수많은 길에 놓여있을법한

평범한 돌들처럼

거칠고 적당히 흙 묻은

 

그런 모습이 자연스러운

그런 흔한 돌과 달리

 

적당하게 흙이 묻어있지 않고

반짝였다

 

자연스럽게 놓여진 돌을 주워

자연스럽지 못한 모습으로

거칠고 단단한 돌을

거칠어진 손으로 닦았다

 

어차피 다시 더러워질 돌을

정성이란 말로 닦아내었다

 

그렇게 아버지는

미련하고 우둔할 만큼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신의 세상을 바꿔나갔다

 

옆에서 멀뚱히 지켜보던 나는

곱기만 한 내 손을 보며

부끄러워 주머니 안에 숨겼다

 

그저 고생다운 고생 한번 안 하고

철이 없는 아이가 된 거 같아서 였을까

선뜻 손을 내밀지 못하고

그저 돌 닦는 모습을 바라보기만 했다

 

코로나로 인해

우리도 어려워졌다

 

하지만 여전히 내가 가려는 길을

응원해 주는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 돌처럼 단단해 보인다

 

여전히 부모님을 찾는

사람들의 마음도 단단해 보인다

 

아버지가 만들었던 세상은

세월도 무시한 채

역경도 무시한 채

단단해졌다

 

가끔씩 그 돌과 그것을

닦던 모습이 떠오른다

 

이곳은 위험하다고 알려주는 그 돌처럼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자신의 일을 하던 사람처럼

단단한 무엇이 되고 싶단 생각을 한다

 

나중에 누군가가

내가 걸어왔던 길을 보고

이정표로 삼을 수 있는

그런 길을 가고 싶다

 

돌을 닦던

도를 닦던

그 자체로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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